저자 : 신우인
하나님의 종’이 되라 선포한 로마서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자유와 만나다!
CBS 성서학당 인기강사 신우인 목사의 쉽게 풀어쓴 로마서 이야기!
로마서는 예수님의 복음을 신학적?변증법적으로 가장 잘 설명한 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세계는 헬라철학의 기반 위에 있었고, 헬라철학에 정통한 사도 바울은 복음의 진수를 이방 세계에 로마서를 통해 설득력 있게 설명했다. 설명 과정에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 교리화할 수 있는 많은 내용들을 담았고, 후대 사람은 기독교를 논증하는 과정에서 그 내용을 교리로 전환하였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로마서를 가지고 교리적 해석에 치중하다 보니, 로마서가 본래 지니고 있는 풍부한 메시지들을 간과한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과 개성과 능력을 계발해 그분의 자녀답게 사는 길을 열어주는 기독교의 본질에 비껴간 행동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로마서는 ‘교리의 책’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의 책’임을 강조하며 로마서에 기록된 복음의 진수를 통해 왜곡된 기독교를 바로 잡고자 했다.
신앙보다는 교회를, 예수님보다는 목사님의 말씀을 우선에 두며 스스로 ‘잘 믿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는 크리스천들에게 저자는 가장 쉽고도 기본적인, 그러나 가장 본질적이며 중요한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로마서 역시 교리적인 설명을 하는 강해는 많이 나와 있으나, 신우인 목사의 책은 로마서로도 충분히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따뜻한 이야기’로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쉽고 재미있게 풀어썼다.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라. 그리고 네 마음대로 하라”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삶의 모토로 삼은 저자는 앞서 낸 책과 함께 로마서 강해에서도 독자들에게 같은 메시지를 전한다. 사람이 만들어놓은 율법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주신 자유의지를 가지고 가장 독특한 방법으로 하나님을 섬길 것을 재차 강조하는 이 책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방법은 지금 머문 곳, 지금 내 모습으로 즐겁게 누리며 사는 것임을 알려주는 영적 지침서이다.
♠ 변화의 능력을 회복시킬 책, 로마서
아우구스티누스, 마르틴 루터, 존 웨슬리, 칼 바르트…. 하나님의 종으로 위대한 삶을 살다 간 이들의 공통점은 ‘로마서’가 그들의 인생에 큰 영향력을 끼쳤다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보잘것없는 인생을 살다가 로마서를 통해 회심하거나 참 자유를 얻었다. 저자는 이런 위대한 자들의 삶을 변화시킨 로마서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며 이야기의 문을 연다. 겉핥기식으로 보면 로마서는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역할에 중점을 두고 설명하지만, 그 역할이 누리는 자유를 이야기하며 ‘하나님의 종’은 결국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권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설명한다. 결국 모든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존엄성을 회복하는 것이 저자가 말하는 로마서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 마침내 주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일
율법과 교리에 허덕이며 살던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다시 그 율법을 단 두 가지로 줄여주셨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와 “네 이웃을 사랑하라”가 바로 그것이다. 저자는 지금까지 쓴 모든 책에서 강조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것은 위에서 말한 ‘하나님의 종’으로서,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감당할 수 있는 모든 부분이기도 하다.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를 잘 이해하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사는 것만 기억한다면 다른 율법이나 교리는 기억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가르치는 자라면 가르치는 것으로,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것이 내 삶에 복의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방법임을 가르쳐준다.
로마서는 최고의 영화를 누리고 있는 로마에, 예수님의 전권 대사 사도 바울을 통해 보낸 ‘예수님의 칙서’입니다. 로마서에서 사용된 단어들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매우 익숙한 것이었습니다. 종, 사도, 예수 그리스도의 것, 복음 등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런 익숙한 단어들에 전혀 새로운 개념들을 담아 놓으셨습니다. _26쪽
예수님은 우리를 소심하고 착한 시민으로 만들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지혜와 영감으로 갈 길 몰라 하는 불쌍한 영혼들을 이끌고, 황폐한 사막과 같은 이 세상을 살맛나는 에덴으로 만드는 생명의 리더들이 되라는 것이 예수님의 소망이자 명령입니다._43쪽
마지막 징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두렵습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싶습니까? 종말론은 이단들의 단골메뉴인데, 왜 이들은 특히 종말론을 들먹이는 걸까요? 간단히 말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두려움을 갖게 하여 자신의 수하로 끌어들이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종말론으로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조장한다면 일단 경계해야 합니다. 두려움과 공포로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는 것은 ‘공갈’ 또는 ‘협박’이라고 합니다. 두려움을 느끼면 생명이 위축되고 상대방에게 사로잡히기 마련입니다. 성경의 내용을 그런 식으로 요용하는 집단이라면 기성교회든 이단이든, 결코 건강할 수 없습니다._114쪽
“비누가 지배하던 욕실에 샴푸가 한 자리 차지할 수 있었던 건, 자신만의 전문분야를 확실히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샴푸가 지배하던 욕실에서 린스가 한 자리 차지할 수 있었던 건, 샴푸의 일을 빼앗지 않고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쓰러뜨려야 내 자리가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샴푸와 린스처럼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을 찾으라는 것이 예수님이 당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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